오랜만에 창고 속을 뒤져보았다. 오래된 디지털 기기들이 수북했다. 더 나은 성능의 제품들이 출시되다보면 창고에는 쓸모없어진 디지털 기기들이 쌓여간다. 게다가, 이 기기들에 장착된 배터리나 건전지가 부식하면서 고철 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한 때는 첨단 기기로서 고가에 구입했던 디지털 기기들을 꺼내어 추억을 회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반짝반짝 눈이 부신 디지털 기기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행복해진다. 남들이 가지지 않은 최첨단 기기를 사용하면서 은근한 자부심도 느끼고, 주변에 자랑질도 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현재 사용 중인 디지털 기기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 번 꺼내어보자. 컴퓨터,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MP3P, 휴대폰, PMP, USB 플래시 메모리 등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기기는 첨단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퇴물 취급을 받게 된다. 컴퓨터가 대표적이다. 약 3년 이상된 컴퓨터는 CPU, 램, 그래픽 카드 등의 성능이 최신 게임이나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해 속도가 느려진다. 이때 컴퓨터를 새로 구입하거나 업그레이드를 하면 쓸모없어진 부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램, CPU 등이다. 386부터 사용하며 업그레이드를 해왔기에 창고에는 쓸모없어진 램들이 수북했다. 한때 램값은 금보다 귀할만큼 가격이 비쌌고 다른 부품과 달리 램은 언제든지 중고로 신품의 70~80% 가격에 되팔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하드디스크처럼 램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중고로 팔 정도는 아니다.

지금의 컴퓨터 메인보드에는 사운드 카드가 내장되어 있지만, 3년 전만 해도 사운드 카드를 별도로 장착해야만 컴퓨터에서 사운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창고를 뒤져보니 VESA, PCI 방식의 사운드 카드 등이 있었다. 한 때 홈오디오를 대처해주었던 사운드 카드와 스피커들이 창구 한 구석에 과거의 화려한 음색을 뽐내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메인보드에 내장된 사운드 카드와 최신의 5.1채널 스피커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PCI 방식의 TV 카드도 현재 사용 중인 USB 방식의 HDTV 수신카드로 인해 창고로 처박힌 신세가 되었다. 컴퓨터 성능이 느린 과거 컴퓨터에서는 PCI 수신카드가 제 성능을 발휘해서 심심하던 컴퓨터 모니터 속을 즐겁게 해주었다.

CRT 모니터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CRT보다 훨씬 가볍고 책상 위 자리도 덜 차지하는 LCD 모니터가 그것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CRT 모니터는 너무 무겁고 공간도 많이 차지해 창고에 두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주변 지인에게 주었다.

DivX 플레이어도 TV 옆에 두고 종종 사용해왔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고 DivX 플레이어에 파일을 전송하는 것도 번거로워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플레이어에 내장된 하드디스크를 따로 떼어내어서 외장형 디스크로 사용하고 있다.

노트북은 데스크탑과 달리 업그레이드가 쉽지 않아 심각한 고장이 나거나 성능이 뒤쳐지면 새로 구입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약 2~3년마다 구입한 신제품에 밀려 구형 노트북들이 창고에 쌓여 있다. 이런 노트북을 제때 팔면 적절한 중고값(구입 가격의 약 30~50%)을 받을 수 있지만, 오래 된 노트북은 10여만원도 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노트북에 내장된 2.5인치 하드디스크를 떼내어 휴대용 외장형 디스크로 사용하기도 한다. 노트북 하드디스크는 데스크탑의 하드디스크와 달리 크기가 작고 USB를 이용한 전원 공급만으로도 사용이 가능해 별도의 전원 어댑터없이도 PC와 USB로 연결해서 외장형 디스크로 사용이 가능하다.

처음 PMP를 구입할 때만 해도 자주 사용할 것 같았지만, 배터리 사용시간이 2~3시간에 불과하고 PC와 연결해 파일을 전송하는 것도 번거로워 거의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최근 사용하는 아이팟터치 등의 새로운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다보니 PMP는 더욱더 손이 가지 않게 되었다.

MP3P도 한 때 호기심 때문에 여러 대를 구입하고 되팔기를 반복하면서 남은 것은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었던 Diamond Multimedia의 RIO 500이라는 모델이다. 디지털 기기가 골동품 가치를 가지려면 수 백년은 흘려야 하니, 첫 MP3P라고 해도 이 제품을 제값을 받고 처분하긴 어렵고, 수 GB의 용량을 저장할 수 있는 최신 MP3P를 놔두고 이 제품을 사용할 이유가 없어져 창고에 고이 보관 중이다.

네비게이션 역시 하루가 멀다하고 신제품이 출시되면서 더욱 성능과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보니 구형 네비게이션은 금새 창고에 처박히기 쉽상이다. 초기 구입한 네비게이션은 조작성이 불편했을 뿐 아니라 처음 전원을 켜고 GPS 수신을 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 불편함이 컸다. 그런데, 최근 출시되는 네비게이션은 GPS 수신은 물론 조작성이 우수하며, PMP의 기능과 WiFi를 이용한 인터넷 연결까지도 제공되어 맛집 등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여러 휴대폰, MP3P를 구입하며 늘어가는 것이라고는 이어폰들이다. 그리고, PC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헤드셋과 PC카메라도 값싸다는 이유로 여러 신제품들을 구입하다보니 금새 낡은 제품들은 창고로 직행해왔다. PC카메라는 최근 출시되는 노트북에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다보니 더더욱 사용할 이유가 없어졌다.

디지털카메라와 네비게이션에 사용되는 플래시 메모리도 늘어간다. 또한, USB 플래시 메모리 역시 이벤트 경품으로 받으면서 쌓여가고 선물을 받기도 해서 창고에 수북히 쌓여간다.

처음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한 것이 1996년에 DC50이라는 제품이었다. 38만 화소에 불과한 이 카메라가 당시 구입가로 약 90여만원나 되었다. 38만 화소 카메라라는 것이 얼마나 열악한 화소인지는 휴대폰 카메라의 화소가 300만에 육박하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워낙 골동품이 된 제품이다보니 버릴 순 없고, 중고로 처분하기도 아까와 창고에 있다.

무엇보다 창고에 있는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것은 수 많은 케이블들이다. 컴퓨터 내부와 외부에 각 기기를 연결해주는 수 십개의 케이블들은 서로 엉켜있고 다시 사용하기 곤란할만큼 오래된 인터페이스를 지원하고 있다.

창고 속에 처박아둔 이들 디지털 기기들을 이제 정리해야겠다. 한 때 최신 첨단 제품으로 각광을 받으며 주인공이었던 요놈들을 필요로 하는 주변 지인에게 나눠주거나 용돈벌이라도 하게 팔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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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하나포스에 기고한 전문을 옮긴 것입니다.
Posted by oo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