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는 2008년 7월부터 MS의 경영을 풀타임으로 하지 않고 파트타임으로 근무한다고 밝히면서 자선재단에 집중할 것임을 밝혔다. 2년 후 은퇴를 공식 발표한 것이다. 시애틀의 명문 집안 외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이 없는 빌 게이츠는 12살 때에 처음 컴퓨터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세계를 호령하는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의 꿈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사업의 동반자인 폴 앨런도 만나 함께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가며 쏠쏠히 용돈까지 벌곤 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지금의 MS CEO인 스티브 발머를 만나게 되었다. 1975년 설립된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시켰던 배경에는 빌게이츠의 오른팔, 왼팔이었던 폴 앨런과 스티브 발머가 있었던 것이다.
포르쉐911을 몰다 경찰에 단속된 빌게이츠의 22살적 모습하지만, 초기 빌게이츠는 불법복제와 MITS에 판매한 베이직 소프트웨어에 대한 소유권 소송으로 인해 고비를 겪으며 고생했다. 이후 그에게 찾아본 첫 번째 기회가 바로 IBM에서 준비하는 개인용 컴퓨터에 탑재할 운영체제 개발이었다. IBM이 1980년에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77년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애플컴퓨터가 애플II를 출시하면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집적회로와 트랜지스터를 활용한 중형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IBM은 애플컴퓨터에 빼앗긴 초기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면서 애플과는 달리 주요 핵심 부품과 운영체제 등을 직접 개발하지 않고 하청을 주었다. 이 당시 운영체제는 게리 킬달이 1975년부터 판매했던 CP/M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매년 2배 이상 매출이 성장하며 운영체제 시장을 독점했던 CP/M은 PC 시장에 진출하려는 IBM에게 더할 나위없는 소프트웨어였다. 하지만, IBM은 사업 수완이 좋은 빌게이츠를 선택하게 되었고, 이 선택은 MS와 디지털리서치(게리 킬달)의 향후 운명을 뒤바꾸게 한다.
그런데, 빌게이츠에겐 이 당시 운영체제가 없었다. 부랴부랴 CP/M을 모방한 Q-DOS를 인수한 빌게이츠는 MS-DOS라는 이름의 운영체제를 개발해 IBM에 공급하게 된다. 그리고, 이 운영체제는 한 마디로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IBM PC는 불티나게 팔렸고, IBM은 PC의 아키텍터를 오픈하면서 다른 IBM 호환 PC도 판매량이 함께 팔리면서 애플보다 더 큰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 백개의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MS-DOS를 PC에 탑재하면서 PC 시장의 대표 운영체제로 MS-DOS는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빌게이츠의 성공 신화에 단초를 제공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후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IBM은 OS/2라는 GUI 기반의 운영체제를 통해 MS를 견제하려 했지만 빌게이츠는 윈도우를 들고 나오면서 MS-DOS 이후를 준비하게 되었다. 빌게이츠에게 제2의 기회를 제공한 윈도우는 1981년 애플의 매킨토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MS는 2년 후인 1983년 11월 윈도우 발표회를 가지고 1985년 11월 윈도우 1.03 버전이 출시되었다. 사실 1984년 출시된 애플의 매킨토시는 스티브 잡스의 요청으로 빌 게이츠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1986년 소개된 윈도우 2.0은 매킨토시의 운영체제를 너무 닮은 탓에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비난하며 둘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빌 게이츠는 1990년 윈도우 3.0을 발표하고, 1995년 윈도우 95가 출시되면서 운영체제 시장을 평정하게 되었다.
빌게이츠의 3번째 기회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1980년대에 WWW을 만든 팀 버너스리와 WWW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웹브라우저인 모자이크를 만든 마크 앤드리슨은 인터넷 대중화의 공헌자라 할 수 있다. 1990년대초 PC 시장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인텔, IBM, MS, 애플 등은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조용히 인터넷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고 그것은 모자이크를 만든 마크 앤드리슨이 넷스케이프사에 부사장이 되면서 본격화되었다. 1994년 소개된 넷스케이프 네비게이션 1.0은 폭발적 인기를 얻었고 승부사인 빌게이츠는 이것을 주목했다. 그래서,1995년 웹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 1.0을 출시하였다. 하지만, 넷스케이프에 비해 성능과 기능이 한참 떨어지는 이 소프트웨어는 빌게이츠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빌게이츠는 끈질기게 익스플로러를 업그레이드하고 또 윈도우 95 OSR2부터는 IE를 끼워 넣으며 윈도우를 납품하는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의 사용 중단을 강요, 협박했다. 이러한 MS의 공격에 넷스케이프의 시장 점유율을 97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고, 1998년에 넷스케이프사는 AOL에 인수되면서 웹브라우저 시장은 운영체제 시장과 마찬가지로 MS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PC 시장과 인터넷 시장을 장악한 빌 게이츠는 홈 네트워크와 포스트 PC 시장의 장악을 위해 X-박스(가정용 게임기 시장), 닷넷(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의 결합), 임베디드 운영체제(PDA, 휴대폰 등에 탑재) 등으로 확장하면서 다양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윈도우 라이브 등의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구글과 야후 등의 인터넷 기업에 정면 도전하며 인터넷 기업으로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빌게이츠가 베이직을 시작으로 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장에 뛰어든 이유도,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이유도 1975년 소개된 MITS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용 컴퓨터에 대한 비전과 가능성을 예견한 것은 앨런 케이이다. 앨런 케이는 전문가가 아닌 개인이 연필과 종이를 사용하는 것처럼 쉽게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 확신하고 다이나북(Dynabook)이라는 컴퓨터를 구성했다.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화면과 스타일러스 펜, 무선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는 다이나북은 1972년 그 개념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1973년 알토라는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한 것이 앨런 케이이다. 또한, 이 시기의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1963년에 이미 최초의 마우스를 소개했다. 그리고, 게리 킬달의 PC용 운영체제인 CP/M을 모방한 MS-DOS는 빌게이츠 성공의 발판이 되었다. 이후, 윈도우는 제록스알토스연구소에서 앨런 케이가 만든 다이나북과 스티즈 잡스의 매킨토시에서 착안해 탄생하였다. 또한, 인터넷 익스플로러 역시 넷스케이프 네비게이션의 뒤를 이어 형편없는 성능과 기능에서 시작한 웹브라우저이다. 즉, 빌게이츠는 ‘기술이 너무 뛰어난 제품은 시장을 너무 앞서가 시장을 지배하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현 시장에서 꼭 필요한 기능을 최적으로 구성해 시장에 내놓는 사업가였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그는 제품의 대중화와 보급, 마케팅에는 귀재였지만 항상 타인의 영감과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복제의 귀신이라는 오명을 받기도 한다.
어쨌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애플 컴퓨터나 IBM 호환 PC 등의 개인용 컴퓨터는 이같이 1970년대의 과학자들과 연구원들이 개념을 잡았고, 이후 1980년대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이 사업적으로 성공시켰던 것이다. 주목받지 못한 수 많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빌게이츠와 MS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