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정치 철학자이자 경제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은 저서 [자유론]에서 건전한 사회를 실현하는 데 ‘반론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떤 의견이 어떠한 반론에도 논박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옳다고 상정되는 경우와, 애초에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목적으로 미리 옳다고 상정되는 경우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고 반증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서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전지전능하지 못한 인간은 이것 외의 방법으로는 자신이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합리적인 보증을 얻을 수 없다”라고 서술했다.
시장 원리에 의해 가격이 결국 적절한 수준으로 수렴되듯 의견이나 언론도 다수의 반론과 반박을 헤쳐 나옴으로써 마침내 뛰어난 것만이 남는다는 사고관이다. 사실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이같은 원리를 밀은 무려 150년 전에 확신하고 자유론에 기술한 것이다. 이같은 밀의 자유론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지적한 ‘보이지 않는 손’과도 일맥 상통한다. 국부론에서는 경제 분야에서의 과도한 통제를 거부하고 시장 원리에 의해 가격이 결국 적절한 수준으로 수렴된다고 했다. 밀은 이 이론을 정치와 언론, 사회 전분야로 확대 해석한 것이다. 한마디로 조직에서 의견 교환이 기탄없이 오가면 오갈수록 의사결정의 질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사업적 이슈에 대해 회의를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 있어 이같은 관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실제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 예일대 교수는 미국이 1961년 미국이 훈련시킨 1,400명의 쿠바 망명자들이 쿠바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쿠바 남부를 공격하다가 실패한 피그스만 침공사건, 1972년의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 베트남 전쟁 등의 어리석은 결정을 한 다수 사례를 연구한 결과 아무리 뛰어난 엘리트들이 모여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동질성이 높은 사람이 모이면 의사결정의 질이 현저히 저하된다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막마의 대변인’을 이용해야 한다. 악마의 대변인이란 다수파를 향해 의도적으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용어는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말로 모범적 신앙인과 성인을 심의할 때 일부러 후보자의 결점이나 미심쩍은 점을 지적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일부러 이와 같은 비판자를 둠으로써 다수가 잘못된 의사결정, 편견에 빠지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임기 2년차를 맞이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10월16일 오전 9시에 법무부 장관으로 부터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대응책을 검토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소집해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위원회를 결성하고 12일 동안 잠도 못자고 회의를 지속했다. 사태는 심각했고 시간도 무한정 유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쿠바의 기지에서 만일 핵 미사일 공격을 하면 미국인 800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만큼 심각한 재앙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첫 째 자신은 회의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눈치보지 않고 소신 발언을 하며 논의를 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둘째 통산의 행정조직 서열이나 절차를 잊고 토론을 하라고 했다. 즉, 각 참석자들이 자신이 맡은 부분의 대변자로서의 역할이 아닌 미국의 국익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제너럴리스트로서 회의에 참석하라고 명했다. 사실 이같은 토론에서는 분야별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발언을 하면 해당 부분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은 반론을 하지 않는 관료적 태도를 방지하고 적극적으로 다양한 반론과 이견이 활발하게 논의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악마의 대변인을 두었다. 대통령의 동생이자 심복인 법무부 장관 로버트 케네디와 고문인 테드 소런슨에게 이 역할을 주어 회의 중 나온 제안들의 약점과 위험 요소를 찾아내 그 내용을 철저히 규명하라고 했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위원회의 의사결정의 질을 더할 나위없이 끌어올릴 수 있었다. 논의 시작 초기만 해도 미사일로 선제공격을 하자는 것으로 중론이 무아졌지만 하루가 지난 저녁에는 격리 또는 해상 봉쇄 아이디어가 나왔다. 다음날에는 선제공격 지지파와 해상 봉쇄 지지파로 완전히 나뉘었다. 이 두파의 끈질긴 토론 과정 속에서 구체적인 작전의 내용과 국민에게 해야 할 연설 개요,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사태와 그에 대한 대응책들이 상세하게 정리되었다. 그렇게 세부적인 내용은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심사하고 다시 서로 비판하며 토론하면서 내용이 보강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을 거친 끝에 케네디 대통령은 해상 봉쇄 작전을 명령한다. 그가 남긴 말은 이렇다. "나는 미합중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어떤 조치도 취할 것이지만 처음부터 해상 봉쇄 이상의 군사 행동으로 나설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공격하면 상대측은 반격해오고 그러면 몇백만명이 희생된다. 이는 매우 큰 도박이다. 나는 모든 가능성을 철저히 검증하지 않은채 이 도박에 뛰어들 생각이 없다.” 만일 케네디 대통령이 악마의 대변인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초반 격양된 분위기 속에서 선제공격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제대로 된 반박이나 토의없이 어처구니없는 불상사가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한 사례는 이 책의 '챕터16. 끝까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는가?’에 나온 내용이다. 이책은 총 50가지의 사례를 통해서 철학자들이 남긴 생각에서 우리 삶의 고민과 행복 그리고 직장에서의 난제에 대한 핵심 원인과 문제해결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즉, 기존의 철학서와 달리 실제 직장인, 경영자들이 사업을 위해 필요로 하는 창의력, 문제해결력, 통찰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50가지의 철학, 사상의 핵심 개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인 야마구치 슈는 게이오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컨설팅그룹과 AT커니를 거친 조직개발, 혁신, 인재육성, 리더십 분야의 전문 컨설턴트이다. 이런 경험 덕분에 철학과 경영을 넘나드는 지식을 가지고 역사 속의 다양한 철학자들이 남긴 사상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생각 도구들을 정리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철학을 배우는 방법은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시간을 축으로 목차 구성을 하지 않고 사람, 조직, 사회, 사고의 4가지 콘셉에 따라 그에 맞는 철학자의 사상을 호출해서 실마리를 제시했다. 둘째 현실에 필요로 하는 철학 사상만을 선별해 실용성을 토대로 편집했다. 한마디로 철학사의 학문적인 중요성보다는 비즈니스와 실생활에서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철학만을 다루었다. 셋째 철학은 심리학, 언어학, 경제학, 문화인류학 등 세상의 온갖 현상에 관해 자유자재로 통찰을 담아낸 학문인만큼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철학자들을 보면 다양한 학문의 소양을 갖춘 전문가들인만큼 이 책의 50가지 사례는 철학 이외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모든 철학자의 생각은 물음의 종류인 What과 How 그리고 배움의 종류인 프로세스와 아웃풋으로 정리된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후 수많은 철학자가 다양한 사고를 전개해오면서 모든 사상은 두 가지 물음에 답하려 노력해왔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 What의 물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 How의 물음. 즉 데모크리토스는 전형적으로 물건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라는 What의 물음에 몰두한 철학자다. 니체는 근대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를 초인의 개념을 통해 풀고자 했던 전형적인 How의 물음에 주력한 철학자다.
그런데, 우리가 철학에서 배워야 할 점은 이같은 What, How에 대한 답 그 자체보다는 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 즉 배움의 종류인 프로세스에 대해 더 집중해야 한다. 이들 철학자들이 What, How의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어떤 과정을 통해 학습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프로세스로부터의 배움은 철학자가 최종 결론에 이르기까지 사고 과정과 문제 설정 방법을 가리킨다. 아웃풋은 철학자가 논고의 마지막 부분에서 최종적으로 제안한 해답이나 주장을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다다른 결론인 ‘세상은 네가지의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아웃풋이다. 그런데 이 아웃풋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아무런 시사점을 주지 못한다. 한 마디로 세상이 4가지의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결론은 과거 머리 좋다는 철학자들이 과학적 지식이 없는 헛소리를 떠들어댄 무지한 자라는 것을 말할 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같은 결론에 다다른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자극이 될만한 시사점들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기 전 기원전 6세기 경에는 물이 대지를 받치고 있다는 정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라는 철학자는 의문을 품게 된다. 대지가 물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면 물을 지지하는 무언가도 있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더 생각을 발전시킨다. 물을 지지하는 그 무언가를 지지하는 또 그 무언가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추론을 거듭한 끝에 “무언가를 지지하는 무언가를 상정하면 무한히 계속되는게 끝없이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결국 지구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지지되지 않고 있으며 허공에 떠 있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 결론은 현대의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진부한 소리겠지만, 당시 시절에 정론을 의심하고 이렇게 끝없이 추론해가는 지적 태도와 사고과정은 시사점을 주기 충분하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50가지의 사례를 통해 수 많은 철학자들이 어떤 사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생각을 발전시켰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속에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도 복잡한 비즈니스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