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는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나를 대변하는 가상의 캐릭터를 말한다. 아이디(ID)는 숫자와 문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하여 아바타는 가상의 캐릭터로 형태를 가지고 있어 개성있게 선택, 구성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한국의 네오위즈는 2000년 11월에 아바타를 이용해 수익모델을 만들어내면서 2001년 유료 아바타로 13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면서 인터넷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싸이월드의 아바타는 다른 커뮤니티인 프리챌, 다모임의 수익모델로 전이되면서 수익의 부재에 허덕이던 인터넷 시장에 오아시스가 되었다. 그리고 20002년 싸이월드의 미니룸 서비스의 수익모델로 진화하면서 인터넷 비즈니스의 성공 사례로 남게 되었다.
☞ 성공이 예견된 기업, 네오위즈
아바타의 성공신화를 일군 창업 이후 매년 흑자를 실현한 네오위즈의 성공비결
네오위즈는 처음 시작부터 알짜배기 회사였다. 네오위즈는 국내에 인터넷이 모뎀으로 보급되며 태동하기 시작했던 1997년 2월에 자동으로 인터넷 접속을 해주는 원클릭이란 서비스를 제공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사용자들은 모뎀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전화선으로 인터넷에 연결했다. 속도는 지금의 10Mbps 인터넷에 비해 무려 1/20에 불과할 정도로 느렸으며 무엇보다 연결 방법이 복잡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초고속 인터넷은 PC의 네트워크 어댑터에 랜 케이블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후반에 모뎀을 이용한 인터넷 연결은 인터넷 연결 서비스 업체(ISP)마다 연결 전화번호는 물론 이거니와 연결 방식과 설정방법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때, 원클릭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단 한 번의 클릭에 어떤 ISP의 서비스건 쉽게 인터넷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원클릭은 2004년 2월29일자로 서비스가 중단되기 전까지 네오위즈의 훌륭한 수익모델로 서비스 개시 8개월만에 매출 1억원을 돌파하며 이미 1997년부터 인터넷 비즈니스로 훌륭한 수익모델을 만들었던 것이다.
☞ 세이클럽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2000년 11월 세이클럽을 유료화하면서 프리미엄 캐릭터 서비스를 선보였을 때 많은 언론에서 우려를 표명했다. 인터넷 기업의 유료화는 항상 네티즌들의 반발과 회원 탈퇴 러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누가 실체가 없는 아바타에 의상을 입히고 액세서리, 헤어스타일, 배경, 애완동물을 구입하는데 돈을 쓰겠는가라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유료 아바타는 대박을 터뜨렸으며 아바타만으로 1년동안 130억원의 매출을 발생시켰다. 아바타의 성공비결은 세이클럽 내에서 사용자들이 남과 다른 자신을 표현하고 온라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한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도록 한 기획력 덕분이다. 세이클럽 내에서 사용자들은 채팅을 하면서 누구나 똑같은 글씨체와 무미건조한 대화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이같은 사용자들의 욕구를 읽어내어 자신을 좀 더 색다르게 표현하고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프리미엄 캐릭터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이 주효한 것이다. 또한 채팅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전광판 예약, 게시판글 강자, 채팅방 입장시 스포트라이트, 부팅티켓 등) 또한 채팅을 보다 즐겁게 해주는 기능을 제공하면서 수익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들의 성공은 즐겁고 재미있는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모든 기획력을 집중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 수익모델을 너무 고리타분하고 어렵게 접근하려 하지 않고 네티즌들이 즐겁게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그것에 과금을 했던 것이다. 물론 세이클럽이 채팅 서비스 자체를 유료화했다면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 난관에 부딪힌 네오위즈
그런데, 인터넷 문화 코드는 빠르게 성장했다가 너무도 빠르게 식어버린다. 초기 커뮤니티 시장의 성장을 주도했던 채팅은 2002년부터 쇠퇴기에 접어들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세이클럽 또한 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채팅의 쇠퇴는 대체제인 메신저, 미니홈피가 활성화됨과 동시에 채팅 서비스가 익명성이라는 가면 아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와 성인 서비스로 변질되어가면서 예고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바타 이후의 성장엔진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 2002년 3/4분기에 세이게임을, 2003년 5월에 세이홈피라는 미니홈피 서비스를 오픈했다. 이때가 네오위즈로서는 가장 힘들던 시기였다. 성장의 모멘텀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서비스인 게임과 홈피 서비스가 시장에서 평가를 받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실제 2001년부터 2002년까지 약 20개월에 걸쳐 네오위즈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특히 2001년말 경쟁사들인 프리챌, 다모임 등이 유사한 아바타 유료화를 전개하면서 매출이 줄어들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미 이 2개의 서비스는 새로울 것이 없는 서비스였기에 더욱더 서비스에 대한 성공은 누구도 몰랐고, 다행히 2개 중 한 개가 희망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게임이었고, 2003년 8월1일 네오위즈는 세이게임을 피망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세이클럽에 종속된 서비스가 아닌 새로운 브랜드로 게임사업에 본격 나서기 시작했다.
☞ 온라인 게임으로 부활을 꿈꾼다.
이후부터 피망의 게임 사업은 네오위즈의 성공엔진이 되었다. 2004년 1분기 실적을 보면 커뮤니티 사이트 세이클럽의 매출은 감소하는 반면 피망을 통한 게임은 크게 증가하였다. 2002년에는 전체 매출의 58%가 세이클럽을 통한 아바타와 세이홈피였고 24%가 게임이었지만, 2005년에는 창사이래 사상 최대의 매출인 1021억원을 달성했는데, 그중 84%가 온라인 게임, 12%가 세이클럽에서 발생했다. 네오위즈는 창업 이후 한번도 적자없이 사업을 운영해왔으며 그 비결은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파악하고 사용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적극 노력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보다 쉽게 연결할 수 있도록 해준 원클릭, 가상공간에서 누구나 만나서 대화를 즐길 수 있는 세이클럽, 개인의 온라인 아이덴터티를 표현하도록 해주는 아바타,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피망에 이르기까지 네오위즈는 끊임없는 자기변신을 통해서 변화를 추구했고 그것이 네오위즈의 성공을 있게 한 것이다.